평화로운 지역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데모스X
발행일 2023-12-18 조회수 158

 

 

로컬의 지속과 미래에 대해 얘기하다, 그 두 번째 이야기.


🔖이전 편에선 지역에서 함께 미래를 그리기 위해 '지역에서 살아가고 법'으로 '관계'에 대해서 안태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님과 얘기를 나누었다. 그에 이어 미래세대와 지역에서 삶을 일궈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다른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지난 11월 성료한 DMZ OPEN 해커톤은 시민들이 한데 모여 지역의 미래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나누는 열린 자리였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그러한 사회적 현실이 만들어 낸 DMZ 접경 지역의 문제에 관해 많은 사람의 머리를 맞대는 흔치 않은 기회. 지역 문제를 화두로 한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는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의미를 만들어 냈다. 
 
멘토로 참가한 (사)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의 이성숙 팀장님을 만났다. 오랜 시간 평화·통일교육의 현장에서 일해 온 그는 DMZ OPEN 해커톤의 열기에 누구보다 반색을 표했다. 이번 기회로 확인할 수 있었던 지역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그렇다면 우리는 소외지역의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 두어야 할까?”라는 구체적인 고민들로 뻗어 나가게 되었는데… 이성숙 팀장님과 함께 평화, 교육의 관점에서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들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눠보았다. 
 
 
현재 일하고 계신 ‘(사)어린이어깨동무’는 어떤 단체인가요? 

‘남과 북의 어린이가 몸과 마음으로 어깨동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으로부터 시작된 단체입니다. 진행하는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먼저 몸으로 어깨동무 할 수 있도록 북쪽에 인도적 지원을 펼치고요. 또 하나는 무관심과 혐오를 넘어 마음으로 어깨동무 할 수 있도록 평화교육을 합니다.  

저의 경우 입사 후 7년 정도 대북 협력 사업, 이후 6년 정도 현장에서 평화교육을 담당했습니다. 현재는 어린이어깨동무 평화교육센터에서 평화교육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고민하며 시민들을 만나는 일을 하고있습니다.
 
 
남과 북의 평화를 누구보다 깊게 고민해 온 입장에서, 이번 DMZ OPEN 해커톤의 멘토직은 남다르게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멘토직을 제안받았을 때 ‘접경 지역의 문제를 고민하는 자리에 사람들이 모일까?’ 라는 의문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 왔지만 대중적인 관심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던 경험 탓이었죠. 하지만 저의 기우와 달리,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며 함께 하는 모습에 감사하고 놀라웠습니다. 그만큼 DMZ 라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널리 확산되어 있구나, 라는 실감도 할 수 있었고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참가팀이 있었나요? 

접경 지역 기성 세대의 삶을 그림책으로 남기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는데요. 그 실행 방법으로 지역의 청소년들을 교육해서 취재를 담당하게 하자는 의견을 제안한 팀이었습니다. 실행 과정이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긴 하지만 접경 지역의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공동체 안에서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아이디어라는 점에서는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인구와 노년 인구와 서로 도울 수 있다는 지점도 좋았고요. 

DMZ 접경 지역은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발견하거나 역량을 개발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부족하죠. 이런 문제는 청소년들이 공동체 안에서 스스로의 쓸모를 발견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연결되는데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난 여기 왜 있는 것일까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해 방황하게 만드는 것이죠.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아이디어와 같은 내용을 계속 발전시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역할을 부여해 준다면, 내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자아정체성, 자존감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DMZ, 그림책 그리고 청년 연결 아이디어를 제안할 팀을 떠오르게 하는 (사)어린이어깨동무 안녕친구야홀의 책

 

DMZ OPEN 해커톤과 같은 프로젝트가 접경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시기, DMZ 지역은 사람들의 일상적 관심 안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교류가 사라지면서 DMZ도 조금씩 잊혀지게 되었는데요. DMZ OPEN 해커톤은 이 지역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아이디어가 정책으로까지 연결되진 못한다 하더라도 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더 큰 평화를 불러올 수 있는 씨앗들이 뿌려진 셈이니까요.  

현재의 남북관계는 여러모로 경색국면에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이럴 때야 말로 남북의 평화를 위한 방안들을 치열하게 준비해야 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DMZ OPEN 해커톤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모인 시민들의 유연하고 빛나는 아이디어 역시 이를 보완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여유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며 가치 있는 정책으로 키워나가길 바라요.  

 
경기 북부, DMZ 접경 지역의 주민들이 가장 불편을 겪고 있는 지역 문제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희 단체는 주로 교육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대부분이라 주민들이 일상에서 겪는 문제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다만, 주민 여러분이 분단이라는 상태로 인해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은 사실인 것 같아요. 지역의 대부분이 개발제한지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건축에 있어서도 고도 제한 등의 엄격한 한계점이 정해져 있죠. 통신 관련해서도 제약이 있고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속 시원하게 토로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존재합니다. 지역에서 겪는 불편함이 안보와 군사적인 문제, 그리고 남북 관계라는 주제와 결부되게 되면 자칫, 평화를 방해하는 의견, 편협한 색깔론에 치우친 의견 등으로 곡해되어 버리기 때문에 편하게 공론화할 수 없는 주제로 분류되기도 하거든요. 그로 인해 지역의 문제, 사회적인 문제임에도 그저 개인이 감수하고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많죠. 

 
수시로 바뀌는 남북의 정치 상황도 지역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습니다. 

남북이 기본적인 소통만 수월하게 이어간다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들인데, 그렇지 못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남북 관계가 좋을 때는 경기도, 인천광역시 지역에서 말라리아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말라리아가 모기로 전파되잖아요. 그래서 남과 북이 공동으로 방역 사업을 해야만 원하는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남북이 공동 방역을 하던 시절에는 보건 의료적인 측면에서의 안전이 보장된 편이었는데, 현재는 이런 공동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죠. 
또 수해 같은 경우도 장마철 상류에 위치한 북쪽에서 방류 일정을 공유해 주고 남쪽과 소통해야 하는데,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태에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방류로 주민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기, 물, 동식물… 남과 북은 사람 빼고는 모든 것을 공유하며 오가고 있어요. 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소통도 잘 이루어 지지 않음으로써 간단하게 막을 수 있는 상황들이 큰 피해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경우가 반복되기도 합니다.

 

⏶ 남북의 교류와 소통이 국가적인 것을 넘어 우리 삶에도 분명 중요한 영향을 준다

 

현재 국내의 공교육에서 평화교육은 어떻게 이루어 지고 있나요? 

평화교육은 그 범위가 꽤 넓습니다. 그래서 글로벌 차원과 한국 사회를 구분해서 말해야 할 것 같은데요. 대부분 서구 사회에서는 개인의 관계와 소통이 공동체나 사회의 변화로 이어지는 과정 전반을 평화교육으로 받아들인다면, 한국 사회의 공교육에서는 다양한 주제 학습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초중고 공교육의 범교과 학습주제는 17가지 정도 갈래로 나뉘는데요. 민주시민교육, 다문화 이해교육, 환경ᆞ지속가능한 발전교육, 통일교육 등이 그 안에 포함됩니다. 이 중에 남북관계를 주제로 한 평화교육은 통일교육에 포함되어 있고요. 정규 과정이나 시간이 주어져 있다기 보다는 보통 특강 형식으로, 담당교사의 재량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DMZ 인근 접경 지역에서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평화교육은 여타 도시의 경우는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경기도나 강원도와 같은 DMZ 접경 지역에서는 북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 특별히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런 고민이 자연스레 교육에도 반영이 되고 있고요.  

 
접경 지역의 공교육 현장에서 평화교육을 나가면,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DMZ 접경 지역에 사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많이 느낍니다. 인프라 면에서도 워낙 소외되어 있고, 각종 문화적 경제적 혜택도 충분히 누리지 못하니까요. 그런데 이 학생들이 평화교육을 통해 내가 사는 지역이 낙후된 까닭은 분단이라는 상황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배우게 되면,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덧붙여 남북관계의 상황 변화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평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른 어떤 지역의 청소년 보다 더 공감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특히 접경 지역의 학생들에게 평화교육은 확실한 존재 의의를 지니네요. 

평화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남과 북이 왜 전쟁을 했고 언제 무슨 사건이 발생했고 등의 지식적인 측면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를 큰 맥락에서 이해하고 서로의 차이를 이해해 보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남과 북은 애초에는 한민족이었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사는 사이 문화와 생각이 달라진 상황이잖아요. 이 자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발전시켜 공존해 나갈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하죠. 이런 부분을 평화교육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외 지역의 청소년들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기성세대인 우리가 준비해 둬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평화교육은 소통하는 방법과 태도를 공유하기 위해 행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과북의 문제든 지역문제든 혐오와 차별의 문제든 공론장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해 둬야 할 부분도 결국은 이런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태도를 만들어 가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접경 지역으로 범위를 좁혀 보자면 나라가 분단 되어 있는 상황으로 인해 발생한 지역 문제들을 개인은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가 지금까지의 사회적 분위기 였다면 이제는 내가 분단 때문에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안전하고 자유롭게 변화해갈 수 있는지를 마음껏 말하고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태도와 분위기를 자리잡게 하는 것이 평화교육이 다음 세대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랑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기본적인 제도와 가치를 가지고 어떤 결론을 낼 지는 누가 결정해 주지 않잖아요. 우리가 결정해 나가는 거잖아요. 평화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화교육 안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그래서 어떤 결정을 해 나갈지는 시민들 모두의 몫인 거죠.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지역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는 열린 장이 필요한 것이군요. 

그렇죠 우리 사회가 치안이 우수하다고들 말하지만, 그와 별개로 우리사회에서 개인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환경은 그다지 안전하게 조성되어 있지 못한 것 같아요. 공론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공격받지 않고 자유롭게 말하기는 어려운 듯싶거든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좀 더 평화로운 사회가 되려면 사회 구성원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DMZ OPEN 해커톤과 같은 행사가 매우 귀하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미래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이, 지역에서의 삶을 잘 일구어 가기 위해 스스로 해야 할 과업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어린이나 청소년은 거주에 결정권이 없잖아요. 현재의 지역에 살게 된 것이죠. 내가 주거를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여기에 사는 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 되려면 어린이나 청소년이 단순히 어떤 호혜를 받는 입장에만 머물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와 능력을 나눠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외된 지역에 살고 있는 자신의 환경이 나를 힘들게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도와주는 밑거름이 된다고 인식하게 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어른들이 제도적인 기반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겠죠. 아이들이 자신의 쓸모를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고 틀을 만들어 주는 일 말이에요. 이런 기본이 마련된다면 그 안에서 아이들은 발전하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또다시 다음 세대로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순환하고 지역을 지켜 나가겠죠.

 

⏶ 나의 생각이 공격받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꿈꾼다

 

 

📝 글 | 김희진
글팔이 독거 젊은이, 그리고 집념의 와식생활자. 밥벌이로써 글을 쓰는 데 전력을 다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대개 소진된 힘을 채우기 위해 누워있다. 쓴 책으로는 <회사 가기 싫은 날>, <결혼을 묻다>,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아서>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maybelastday   

📷 사진 | 엠버 (데모스X1팀 크루)
꺼지지 않는 불씨로 주위를 따스하게 만들고 싶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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