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을 지키는 관계는 어떻게 시작될까?

데모스X
발행일 2023-12-11 조회수 149

 

로컬의 지속과 미래에 대해 얘기하다.


🔖이전 편에선 ‘과소비 되는 로컬'에서 ‘진짜 로컬’이 무엇인지, 그것을 탐구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 현재의 로컬에 대해 논했다면, 이번엔 ‘로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사실, 지역소멸을 야기하는 지방 도시의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 유출, 지역 쇠퇴 등의 문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나의 문제로 인식하고 극복해 나가려는 책임감이나 적극성을 가진 이들은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얼마 전,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진행된 DMZ OPEN 해커톤은 ‘더 큰 평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발전시켜 정책화까지 이어지게 하는 일련의 과정에 시민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지역 문제를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과 의견이 공공의 정책으로 발현될 수 있었던 흔치 않은 기회, 이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한 안태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를 만나, 지역이 처한 현재, 그리고 준비해야 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DMZ OPEN 해커톤에 멘토로 참여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분단망각증’이란 표현이 있어요. 일상이 ‘분단’으로 인해 결정되거나 한계상황에 처하는 일이 많은데도 대부분은 이를 잊고 지내죠. 북한의 도발 뉴스가 흘러나올 때만 잠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금세 잊히길 반복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DMZ OPEN 해커톤을 통해 ‘평화’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DMZ 인근 지역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시간을 가졌잖아요. 이런 과정 자체가 귀하고 반가웠습니다.
 
 
⏶ 종로 인근의 지역개발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한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안태호 이사
 
 
특별히 기억에 남는 참가팀이 있을까요?  

진행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팀을 만났는데요. 그중에서 동두천 성병관리소를 문화 공간으로 바꿔보고 싶다던 팀이 떠오르네요. 

최근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보존을 요구하는 시민의 요구와 활동으로 지자체가 공간을 구입하는 성과를 냈지만, 지방정부 수장이 바뀌고 결국 정책이 뒤집히며 허물어졌어요. 현재 동두천 성병관리소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는데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화를 지렛대 삼아 변화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 특히 지역의 어두운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을 숨기거나 사라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보존하려는 활동을 펼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DMZ OPEN 해커톤과 같은 프로그램이 지역 문제 해결에 어떤 의의를 지닌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프로그램을 한번 했다고 지역 문제에 극적인 해결책을 발견한다거나 할 순 없겠죠. 하지만 지역 주민들, 그리고 관심이 있는 시민들이 참여해서 DMZ 인근 지역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들을 체계화해 보는 장이 펼쳐졌다는 점, 나아가 실제 정책 제안으로까지 이어지는 기회가 생겼다는 점 자체가 큰 의미인 것 같아요. 

지역 문제를 인식하거나 불만을 느끼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갔잖아요. 동료를 모으고 함께 아이디어를 만들고 체계화해서 문서로 정리하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며 피드백을 받고, 일부는 실제 정책으로까지 제안되는 그 과정을 경험하는 기회가 흔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 나의 생활 안에서 발생하는 불편을 건강하게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이런 적극적인 참여가 흔한 일이 되어야만 지역 안에서 겪는 문제를 일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질 텐데요. 아직은 쉽지 않죠. 살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불만을 그저 욕하거나 SNS에 쓰는 정도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민원을 제기하거나 주민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대응하는 등 책임 의식을 가지고 해결해 보려는 시도가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DMZ 인근 지역을 좀 벗어나서 더 큰 범위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대한민국 전체로 보았을 때 지금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지역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래도 어느 지역이나 보편적으로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일자리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역의 인구 소멸에 대한 위기의식은 많이 들어보셨잖아요. 그런데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사실 인구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은 낮은 출산율이 아니라 높은 이주율에 있습니다. 물론 전국적으로 출산율이 감소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지역의 경우 그보다는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빨리 떠나간다는 점이 더 문제가 됩니다.

시 단위, 군 단위를 비교해 보면 인구밀도가 낮은 군 단위가 오히려 출산율이 높다는 결과도 있어요. 결국, 사람이 적게 태어나는 것이 아님에도 지역에서 살기가 팍팍하니까 떠나게 되고 인구가 유출되는 것이죠. 일자리는 물론 다닐만한 학교가 없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어찌 보면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원이나 정책이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인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관광객 유치나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의 문제에 대해 어느 한 지역의 정책이 성공적인 결과를 얻으면,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유사한 정책들이 우후죽순으로 퍼져나가는 면이 있는 것 같거든요. 

동감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쉬운 점이 분명히 있죠. 그래서 춘천에서는 도시를 읽어내기 위해 연구자들을 모아 레지던시를 운영한 적이 있어요. 보통 지역의 레지던시라고 하면 작가나 기획자들이 중심이 되는 것과 달리 도시나 문화정책을 연구하는 인물들을 불러 몇 달 동안 이 도시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어떤 문화 정책이 필요한가? 에 대해 실무자들과 토론하며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던 사례도 있습니다.  

지역마다 욕구와 생활상, 필요와 관계 등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나 지원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반드시 지역만이 지닌 고유성을 읽어내려는 일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대부분의 지역이 이런 과정을 진행한다고는 생각하는데요. 이제까지는 지역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내는가? 그것을 뒷받침하는 행정력이나 관련 부서의 의지가 있는가? 등의 복합적인 요소의 불협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지역의 특색을 고려하지 못하고 단지 지금 유행하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하거나, 당장의 돈벌이에만 집중하다 보면 결국 나름의 매력을 잃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결국 사람들도 점차 찾지 않는 소외 지역이 되어 갈 테고요. 

 
현재, 우리 세대에서는 지역 문제라는 것의 개념을 인지하고 그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단계에는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다음 세대가 겪게 될 지역 문제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미리 준비해 둘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지역에 사는 청년 중에 지금 사는 곳을 벗어나야 한다, 라는 일종의 패배감을 지닌 경우가 많아요. 인프라의 부족 등의 실질적인 문제를 겪으며 체감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일정 부분은 지역의 어른들에 의한 학습된 부분, 나아가 사회적 인식이나 분위기를 그대로 받아들인 영향도 있거든요. 주변에서 자꾸만 성공하려면 지역을 떠나라, 실패한 사람만 지역에 남는다, 여기에는 미래가 없다, 같은 말들을 하니까요. 저는 이런 인식이 지역을 망친다고 생각해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애정을 가질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춘천문화재단에서는 ‘도시가 살롱’이라는 사업을 통해 청년들이 서로의 취향을 매개로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했어요. 춘천 지역 내 서점이나 공방 등 다양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취향 기반의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지역 내의 인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선한 것이죠. 이런 기회를 통해 청년들은 지역에 대한 애착을 높일 수 있었고요. 

 
결국 지역 내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이 중요하겠네요. 

지역문제를 해결하려는 관련 정책이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지역 주민의 일상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장 내 문제가 아니면 관심이 생기지 않잖아요. 결국 지역이 살아남으려면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이 애정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 둘 수 있는 일도 이와 연관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개개인이 사적인 애착을 가질 수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장, 계기 같은 것들을 마련해 두는 일이죠. 

 
그렇다면, 오랜 시간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에서 뛰어온 1인으로서 다음 세대, 특히 지역 안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나 청소년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제가 감히 누군가의 인생에 대해 어떤 말을 더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어느 지역의 누구라도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부라는 게 특별히 학문적인 무엇이라기보다는 자기 좌표라고 할까요, 지역에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기존의 상황, 시스템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지 말고, 내가 속한 이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고 내가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골몰해 보았으면 해요. 그래서 내 생각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정책에 닿을 수 있도록 직접 참여했으면 하고요.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비전이 있었으면 합니다. 내가 사는 지역 안에서 쓰레기 문제, 주차 문제, 사람들과의 관계 같은 직접적으로 나와 맞닿은 부분부터 살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나로부터 시작된 일들을 고민하다 보면 그것이 더 큰 세계와 만나는 지점이 있을 거예요. 

 
온전히 자신의 관점으로 내가 사는 지역, 지역이 처한 문제, 내가 겪는 불편함 같은 것들을 바라보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맞아요. 그리고 저는 다른 지역을 포함해 외국에도 많이 나가보았으면 해요. 지역 청년들이 지금 살고 있는 세계에만 매몰되지 말고 다른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도 많이 경험해 봤으면 해요. 그런 차이를 배움으로써 본인의 지역에 더 나은 제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마지막으로 내가 사는 나의 지역에 대한 애착을 키울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하나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역 안의 모임에 나가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생활 체육이든 동호회이든, 아니면 지역에서 개최하는 어떤 행사에 나가보든, 무엇이든 좋습니다. 지역 사람들과 만날 기회를 가져 보았으면 해요. 개인에만 머물러 혼자 살아가지 마세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경험으로부터 사회적 연대가 시작되고, 지역의 지속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 글 | 김희진
글팔이독거젊은이, 그리고 집념의 와식생활자. 밥벌이로써 글을 쓰는 데 전력을 다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대개 소진된 힘을 채우기 위해 누워있다. 쓴 책으로는 <회사 가기 싫은 날>, <결혼을 묻다>, <오늘 밤은 잠이 오지 않아서>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maybelastday   

📷 사진 | 엠버 (데모스X1팀 크루)
꺼지지 않는 불씨로 주위를 따스하게 만들고 싶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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